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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개발자가 되려 하지 마세요, 설계하세요

노출 콘크리트의 기하학적 패턴이 반복되는 브루탈리즘 건축 구조물.
Photo: Rowan Heuvel · Unsplash

직함만으로는 실무 앞에서 작아지는 시대. WEF·Sackman·a16z·Anthropic의 데이터를 빌려, 코더·PM·디자이너 세 직군을 관통하는 하나의 생존 조건을 묻습니다 — 나는 실행하는 사람인가, 설계하는 사람인가.

By @coldsurf2026.07.05Engineering@coldsurf사람이 직접 쓴 글

최근 들어, 직함은 달고 있지만 막상 실무에 들어가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현대에도 과거에도, 직함뿐인 명함은 크게 의미가 없었겠지요. 그러한 사람은 실무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결국 비방 경쟁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AI 시대에 자기 분야의 단순 업무를 잘 처리하는 것만으로는 끝났다라는 말은 이미 클리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클리셰가 된 데에는 근거가 있습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Future of Jobs 2025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일자리의 22%가 재편되고, 지금 통용되는 스킬셋의 39%가 쓸모를 잃는다고 봅니다. 그런데 같은 보고서가 9,200만 개가 사라지는 동안 1억 7,000만 개의 새 일자리가 생겨 순증 7,800만 개를 예측합니다. 사라지는 것은 직무 자체가 아니라, 실행만 하는 자리입니다. 이건 AI 시대뿐만 아니라, AI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도 엄밀히 따지면 그랬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살아남는 자는 설계자입니다.

나는 단순 코더인가? 설계자인가?

코딩이란 무엇일까요? 내가 열심히 만든 코드는 어떻게 돌아갈까요? 사람들이 내가 만든 웹사이트를 방문해서 어떻게 로그인을 하고 회원가입을 하고, 여러 유저 인터랙션을 통해 로그를 남기는 걸까요?

코딩은 시뮬레이션입니다. 내가 작성한 코드가 저수준 언어로 컴파일되고, 그 컴파일된 대로 작동하도록 설계하는 것 자체가 코드를 쓰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가 만들어 놓은 시뮬레이션과 다르게 작동하는 것을 버그라고 부릅니다.

결국 잘하는 코더는 설계를 잘하는 사람이며, 그 설계에 따라 모든 것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설계자입니다. 정적으로 컴파일된 코드들은 결국 내가 만든 설계의 결과물이 되며, 이 결과물을 통해서 사람들이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유도합니다.

이 격차는 감상이 아닙니다. 1968년 Sackman·Erikson·Grant의 실험은 경력 7년 차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 코딩 속도 약 20:1, 디버깅 약 25:1의 차이를 관측했습니다. 표본이 12명뿐이고 서로 다른 언어·환경을 뒤섞은 한계가 있어 숫자를 그대로 믿을 것은 아니지만, 그 한계를 걷어내고도 최고와 최저 사이엔 10배 이상이 남습니다.

The Origins of 10x - How Valid is the Underlying Research? | ConstruxI had the chance to contribute a chapter to Making Software (Oram and Wilson, eds., O'Reilly). The purpose of this edited collection of essays is to pull
Construx

넷플릭스의 Reed Hastings 역시 "최고는 평균보다 쉽게 10배는 낫다"며, 평범한 엔지니어 열 명 대신 록스타 한 명에게 몰아주는 편을 택했습니다. 그 격차의 정체는 타이핑 속도가 아니라 설계입니다.

나는 단순 직함뿐인 PM인가? 아니면 로드맵 설계자인가?

여러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이 훌륭한 PM과 함께하려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자사의 프로덕트를 조금 더 넓게 보며, 넓고 긴 호흡의 관점에서 유저를 끌어들이고 그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진정한 PM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로드맵을 설계한다.

PM은 CEO의 호위무사가 아닙니다. 단순히 CEO 옆에서 혹은 힘 있는 의사결정자의 한마디 한마디에 동의하며 요약해주는 비서가 아닙니다. AI 시대에서는 언어의 장벽도 무너지는데, 이러한 호위무사 트랜슬레이터는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실행과 번역은 위임되고, 사람에게 남는 몫은 방향을 잡는 일로 옮겨갑니다. Anthropic의 Economic Index를 보면 2025년 11월 기준 AI 사용의 52%가 사람이 개입해 방향을 잡는 augmentation이고, 통째로 맡겨버리는 automation(45%)을 앞질렀습니다. 도구를 쓰는 방식조차 실행에서 방향으로 이동하는 중입니다.

PM은 자사 프로덕트의 수명을 설계하는 사람입니다. 개발자가 미리 기획된 프로덕트를 실제로 코드단으로 설계하여 배포한다면, PM은 이 미리 기획된 프로덕트에 대한 더 넓은 수명을 이끌어가고 수익을 창출해내야 하는 역할이지요. 어떻게 하면 유저들이 초기 서비스에서 흥미를 느껴 가입 전환율을 높일 수 있을까에서 시작해, 프로덕트가 성숙해지면서 각각의 피쳐 단위를 적절하게 분배하고, 그 분배된 피쳐들을 프로덕트의 성격에 맞게 일관성 있게 얼라인하며 BM으로 전환해내는 것을 설계하는 일이 PM의 미래지향적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심미감을 강조만 하는 디자이너인가? 아니면 유저의 행동을 설계하는 설계자인가?

이미 각종 디자인 프레임워크나 툴들에는 AI 챗봇이 등장해 있습니다. 결국 디자이너만 접속하던 Figma는 이제 더 이상 디자이너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디자인을 공부하지 않아도 Claude Design을 통해서 카드뉴스 마케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심미감의 영역은 이미 AI가 가로채 간 지 오래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실리콘밸리도 하고 있습니다. OpenAI의 Greg Brockman은 "taste가 새로운 핵심 스킬"이라고 말했고, a16z는 "실행의 비용은 붕괴했지만, taste와 관점의 수익률은 급등했다"고 정리합니다. 이들이 드는 비유는 패션 하우스입니다. 봉제와 재단(실행)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희소한 것은 크리에이티브 디렉션이고 라벨에 박히는 이름이라는 것이지요.

Humans Are for Ideas, AI Is for Execution | Andreessen HorowitzWhile AI excels at content execution, automation, and growth tactics, building a distinctive social media identity and breakout ideas still rely on human creativity, taste, and authentic voice.
Andreessen Horowitz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 조각난 디자인의 영역들을 유저의 관점에서 보고 유저의 적절한 행동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디자이너의 미래지향적 업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는 단순히 대기업의 이미 만들어진 디자인 프로세스를 카피하고 심미적으로만 만족되면 넘어가는 디자이너인지, 아니면 조금 더 나아가 자사 서비스의 특성까지 분석하여 새로운 유저 행동을 창출해낼 수 있는 디자이너인지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나는 PM이기도 하고, 개발자이기도 하며 디자이너이기도 한데요?

이 글을 주욱 써내려가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나는 PM이면서 개발자이며 디자이너인데?

제가 이 글에서, 단순 업무만 해내거나 주어진 영역 안에서만 생각하고 설계하지 못하는 사람은 몇 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인 이야기를 강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는 앞으로 설계하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남지 못한다에 가까운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Sam Altman은 2024년, 테크 CEO들끼리 "1인 10억 달러 회사가 처음 나오는 해"를 두고 내기를 걸었다고 했습니다. "AI 없이는 상상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일어날 일"이라면서요. 한 사람이 PM이자 개발자이자 디자이너로서 회사 하나만큼의 레버리지를 갖는 시대라면, 그 한 사람의 값어치는 결국 얼마나 멀리까지 설계할 수 있는가로 갈립니다.

머리와 잔머리. 그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잔머리는 단순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는 요령에 가깝지만, 머리는 진정으로 분석하고 그 분석에서 얻은 인사이트로 설계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설계는 어렵습니다. 두세 단계 정도 미리 앞을 내다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틀릴 가능성이 높기에, A/B 테스팅 같은 효율적인 프로세스로 풀어나가는 방식도 고려해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무적 관점입니다. 정성적인 관점이 아니라, 어떤 툴을 사용해 어떻게 효율적으로 일할지, 혹은 조직 문화를 실무 관점에서 어떻게 가져가 더 효율적인 업무 문화를 만들지 같은 것들 말이지요.

혁신의 시대는 어지럽습니다. 그만큼 기회가 생겨납니다. 이쯤에서 다시 묻고 싶습니다.

나는 단순 노동자인가? 아니면 그 위를 두세 단계 앞서 예측하는 설계자인가?

미래에 살아남으려면 꼭 필요한 질문이 아닌가 합니다.


인용·출처

본문의 통계·직접인용은 1차 출처로 대조했고, 수치의 방법론적 한계는 본문에 함께 밝혔습니다. 따옴표로 옮긴 해외 인용은 원문에 충실한 번역입니다.

  • World Economic Forum — Future of Jobs Report 2025 — 2030년까지 일자리 22% 재편, 스킬셋 39% 노후화, 9,200만 소멸·1억 7,000만 창출(순증 7,800만)의 근거: weforum.org
  • Construx — The Origins of 10x (Steve McConnell) — Sackman·Erikson·Grant(1968)의 코딩 20:1·디버깅 25:1 관측과, 표본 12명·언어/환경 혼재라는 방법론적 한계에 대한 분석: construx.com
  • CNBC — Netflix CEO Reed Hastings on high salaries (2020)"The best are easily 10x better than average" 및 록스타 한 명에게 몰아주는 채용 전략의 1차 출처: cnbc.com
  • Anthropic — Economic Index — 2025년 11월 기준 AI 사용의 augmentation 52% > automation 45%, human-in-the-loop이 지배적이라는 데이터: anthropic.com
  • Greg Brockman (OpenAI) — X"taste is a new core skill" 발언의 1차 출처: x.com
  • a16z — Humans Are for Ideas, AI Is for Execution (Olivia Moore)"the cost of execution has collapsed, but the returns to taste and point of view have gone way up" 및 패션 하우스(크리에이티브 디렉션이 희소) 비유: a16z.com
  • Forbes — The Billion-Dollar Company Of One (2025) — Sam Altman이 테크 CEO들과 걸었다는 "1인 10억 달러 회사" 내기, "AI 없이는 상상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일어날 일" 발언의 출처: forbes.com

설계자·잔머리·머리에 대한 판단, 그리고 세 직군을 관통하는 논지는 인용이 아니라 본 글의 해석입니다. 위 출처는 그 해석이 딛고 선 사실·데이터의 근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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