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에서 시작된 질문
요즘 회사 윗선에서 종종 이런 말이 들린다. "이거 그냥 바이브 코딩으로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각 직군의 사람들은 더 이상 "100% 아니다"라고 답하기 어려워졌다. 바이브 코딩이라는 단어 자체는 애매하다. 하지만 AI가 내가 해오던 일의 상당 부분을 대체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직군은 결국 도구의 이름이었다
풀스택 개발자라는 말을 떠올려보자. 나는 이것을 늘 "업무 범위"의 차이로 정의해왔다. 프론트엔드라는 도구만 다루는가, 프론트엔드와 백엔드를 함께 다루는가. 어떤 도구를 쓰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렇다면 디자이너, 서비스 기획자,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라는 구분은 어떨까? 이 이름들 역시 특정 도구를 다루는 사람을 가리키는 호칭이었다.
AI는 이 호칭들을 빠르게 무력화하고 있다.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디자인 토큰을 정의한다. 서비스 기획자가 사업 개발을 한다. 도구를 가르던 벽이 무너진다.
인간 시대의 끝이라는 주제의 대담에서 두 개발자는 이렇게 말했다. "길어야 5년, 짧으면 3년." 직군의 경계가 사라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이 부분에 깊이 공감했다.
직군의 분리가 만드는 병목
왜 회사들은 직군 경계를 이렇게 빠르게 허물려고 할까?
답은 단순하다. 사업은 속도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IT 부서를 떠올려보자. 디자인 시안이 나와야 개발이 시작된다. 개발자는 디자이너를 기다리고 디자이너는 기획자를 기다린다. 사람의 속도가 사업의 속도를 결정한다.
AI 시대에는 개발자가 디자인을 대체한다. 역으로 디자이너가 개발을 맡기도 한다. 직군의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말은 곧 병목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같은 논리는 사업 모델(BM) 측면에서도 통한다. 서비스 기획자만 다수 있는 회사를 상상해보자. 이들은 BM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고 새로운 BM을 발굴할 의지도 크지 않다. 하지만 회사는 이윤을 추구해야 한다. 이 구조에서는 "사업 감각이 있는 기획자 + AI"가 "서비스 기획만 하는 사람들"을 대체한다.
생존이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생존하기 위해 일한다. 회사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고 성과를 바탕으로 더 나은 일자리로 이직한다. 이 구조의 본질은 무엇인가?
회사가 살아남아야 노동자도 살아남는다.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이윤을 추구해야 한다. 노동자의 생존은 결국 회사의 이윤 추구와 같은 방향을 향한다.
AI 시대는 이 본질을 다시 묻는다.
당신은 정말로 이 논리를 받아들였는가?
직군이 사라지는 자리에는 본질만 남는다.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 "돈을 끌어오는 일"만 남는다. 앞으로의 채용에서 사업 감각이 없는 사람의 자리는 빠르게 줄어든다.
1원이라도 벌어본 경험
그래서 앞으로의 이력서에는 다른 항목이 필요하다.
시켜서 완성한 작업보다, 내가 주도하여 1원이라도 벌어본 경험.
전자는 도구를 다룰 수 있다는 증명이다. 후자는 이윤을 만들어낸다는 증명이다. AI가 도구를 대체하는 시대에 어느 쪽이 더 큰 가치를 발휘할지는 명확하다.
앞으로 3-5년, 직접 1원이라도 벌어본 경험이 없다면 — 혹은 그에 대한 진지한 고민조차 해본 적이 없다면 — 빠르게 도태된다. 살아남는 사람은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가 아니다. 수단과 방법을 불문하고 이윤을 가져다주는 사람이다.
진화에 적응한 종만이 살아남는다
최근 AI와 윤리에 대한 논의가 많다. 인간이 만든 AI가 인간의 일할 권리를 빼앗는다는 이야기다. AI가 파괴적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에도 진화에 적응하지 못한 종은 모두 사라졌다. 주판을 두드리던 은행원의 스킬은 더 이상 생존의 스킬이 아니다. 산업화로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면서 많은 노동자가 자리를 잃었던 것은 역사가 이미 증명한 사실이다.
예전에는 좋은 코드를 작성하는 것이 좋은 커리어를 만든다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좋은 도구를 다루는 사람에서, 이윤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으로. 직군에 갇힌 노동자에서, 직군을 넘나드는 사업가로.
AI로 이윤 구조를 끝내주게 설계하는 사람. AI로 불필요한 병목을 없애는 사람. 살아남는 사람은 이 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