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BUMS COLDSURF Pick #016 · 리뷰

King

Gnome
2022

Comedy Stoner의 진수 — 무거우면서 능청맞은 둠

장르Stoner Rock / Stoner Metal
레이블Polderrecords
리뷰 · 2026.06.15

Gnome과 King

Comedy Stoner — 무거우면서 능청맞은 둠


벨기에에서 온 도파민 폭격기

Gnome 은 벨기에 안트베르펜(Antwerp) 출신의 3 인조 스토너 록 밴드입니다. Rutger Verbist, Egon Loosveldt, Geoffrey Verhulst. 세 사람이 모여 만드는 사운드인데, 라이브 무대에서 멤버와 관객 모두 빨간 뾰족 모자 를 쓰고 등장합니다. 정원에 놓는 garden gnome 의 그 모자 그대로입니다. 밴드명과 무대 비주얼이 처음부터 한 묶음으로 설계된, 흔치 않은 경우입니다.

스토너 록이라는 장르를 들으면 보통은 사이키델릭한 안개, 모래바람 부는 사막, 트랜스에 가까운 느린 호흡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묵직하고, 느리고, 약간은 무뚝뚝한 분위기지요.

Gnome 은 그 공식을 살짝 비틉니다. 무겁고 거친 톤은 그대로 가져가되, 능청맞은 유머 를 곡 위에 한 스푼 얹어 버립니다. 둠을 듣는 진지함과, 만화 캐릭터가 무대 위에서 헤드뱅잉 하는 듯한 코믹함이 동시에 들어옵니다. 누군가 이걸 Comedy Stoner 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한 바퀴 돌려보면 그 별명이 꽤나 정확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후에 찾아보니, humor + heaviness 의 정전으로 가장 자주 호명되는 밴드는 미국 포틀랜드의 Red Fang 이더군요. 뮤직비디오에서 농담을 던지고, 무대에선 묵직한 리프로 받아치는 그 결. Gnome 의 위치는 Red Fang 의 계보 위에서 중세 판타지 컨셉 으로 한 번 더 비튼 곳에 있습니다.

King — 두 번째 정규

2022 년 5월 6일에 발매된 King 은 Gnome 의 두 번째 정규 앨범입니다. 데뷔작 Father of Time (2018) 이후 4 년 만의 작품이고, 이후 Vestiges of Verumex Visidrome (2024) 가 더 나왔습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세 장 가운데 두 번째 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습니다.

레이블은 벨기에 인디 레이블 Polderrecords. 카탈로그 번호 PR033. 녹음은 안트베르펜의 Rockstar Recordings 에서, 엔지니어 Frank Rotthier 와 함께 2020 년 가을 록다운 사이사이에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 시기에 녹음된 헤비 인디 음반들에는 묘하게 내적 농도 가 짙은데, King 에서도 그 농도가 그대로 들립니다.

앨범 전반에는 중세 판타지 RPG 같은 컨셉이 흐릅니다. 곡 제목들도 그러합니다 — Ambrosius, Wenceslas, Antibeast, Bulls of Bravik, Kraken Wanker, Platypus Platoon. 어느 중세 왕국에서 난쟁이들이 왕좌를 두고 익살스러운 전쟁을 벌이는 듯한 그림이 그려집니다.

저는 Wenceslas 를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인트로 리프가 묘하게 캐치합니다. 둔중하게 깔리는 다운튠 기타 위에 보컬이 거의 동화 속 화자 처럼 얹어집니다. 무거운 사운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한 번 듣고 따라 흥얼거리게 되는, 그런 종류의 캐치함입니다. 곡 이름의 Wenceslas 도 보헤미아의 왕 성 바츨라프(St. Wenceslas)에서 따온 것이라, 곡 제목 하나에도 중세 군주의 라틴형 이름을 새겨 넣는 그들의 컨셉 일관성이 묻어납니다.

리프와 톤

스토너 록의 매력은 결국 리프 입니다. King 의 리프들은 묵직하지만, 둠 메탈처럼 한없이 늘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펑키한 그루브가 곡 사이사이에 끼어 있어서, 듣는 사람의 어깨가 가만히 있질 못합니다.

기타 톤은 적당히 퍼지하면서도, 클래식 스토너의 모래 섞인 따뜻함 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퍼즈를 과하게 두르지 않습니다. 앰프의 살아있는 게인 이 더 도드라지는 결입니다. QOTSA 초기작에서 들리는 그 텁텁하고 따뜻한 톤과 비슷한 결이 곳곳에서 들립니다.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스토너 록 톤의 원형은 1990 년대 초반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Kyuss, Sleep, Fu Manchu 가 정의한 것이고, Kyuss 시절 Josh Homme 의 톤은 페달이 아니라 앰프 에서 거의 다 만들어진 것으로 유명합니다. 페달 위에 페달을 얹어 wall of fuzz 를 짓는 길이 있고, 앰프의 게인 자체를 살아 있는 채로 끌고 가는 길이 있습니다. Gnome 은 분명히 후자의 계보에 더 가깝습니다.

드러밍 역시 묵직하지만 빠르게 움직입니다. 스토너 록 드러밍은 보통 느린 헤비함 인데, Gnome 의 드러밍은 빠르고 능청맞은 헤비함 에 가깝습니다. 그루브 전체가 둠 쪽이 아니라 그루브 메탈 쪽으로 한 발 기울어 있습니다.

Ambrosius, 첫 곡의 무게

앨범의 첫 트랙 Ambrosius 는 King 의 분위기를 한 번에 압축해 보여줍니다. 처음 30 초는 그저 묵직한 둠처럼 시작합니다. 곧 펑키하고 위트있는 리프가 치고 들어오면서 이 앨범은 단순한 둠이 아니다 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테크니컬한 진행이 곳곳에 숨어 있어서, 기타를 잡고 따라 쳐 보면 의외로 손이 바빠집니다. 둠 메탈처럼 다섯 마디를 하나의 리프로 끌고 가는 곡이 아닙니다. 짧은 리프들이 빠르게 갈아 끼워지는 구성입니다. 곡 단위로는 짧은데, 곡 안에서의 변주는 길게 가져갑니다.

두 번째 트랙 Your Empire 에는 아이슬란드 하드락 밴드 The Vintage Caravan 의 보컬리스트 Oskar Logi 가 게스트로 참여합니다. 데뷔작 대비 King 에서 가장 분명하게 달라진 점이 보컬 레이어의 다양화 인데, 그 변화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곡입니다.

Antibeast — 앨범의 척추

Antibeast 는 King 의 척추 같은 곡입니다. 앨범의 색깔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트랙이라, 누군가에게 King 을 처음 추천한다면 저는 이 곡부터 들려줄 것 같습니다. 리프의 무게, 보컬의 익살, 드러밍의 능청. 세 요소가 한 곡 안에서 가장 균형 있게 맞물립니다.

스토너 록이지만 마냥 늘어지지 않습니다. 그루브 메탈처럼 신경질적으로 굴지도 않습니다. 그 사이 어느 지점에서 Gnome 만의 결이 만들어집니다.

Platypus Platoon — 11 분의 클로저

앨범은 마지막 트랙 Platypus Platoon 으로 닫힙니다. 러닝타임이 11 분 45 초. 앞의 일곱 트랙이 3~5 분 사이의 짧은 호흡으로 빠르게 갈아 끼워지다가, 마지막에 와서 한 곡으로 길게 풀어 헤치는 구성입니다.

이 클로저에서 비로소 둠적 무게 가 가장 짙어집니다. 짧은 곡들에서는 능청맞은 그루브가 앞에 나서 있다면, 여기서는 그 그루브가 가라앉습니다. 그 위에 묵직하게 끌고 가는 시간 이 들어섭니다. King 은 짧은 곡들의 모음이 아니라 마지막에 epic 으로 닫는 구조 다 — 이 사실이 이 트랙 한 곡으로 분명해집니다.

벨기에라는 좌표

"벨기에에서 온 스토너 밴드" 라는 라벨은 한국 청자에겐 고립된 변방의 산물 처럼 들리기 쉽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지난 20 년 사이에 벨기에는 도매·슬러지·스토너 신이 언더에서 메이저 투어급 으로 커진 곳이고, AmenRa, Steak Number Eight, Brutus, Oathbreaker 같은 밴드들이 이미 월드 투어 단계에 들어가 있습니다.

안트베르펜의 Trix 라는 베뉴에서는 매년 Desertfest Belgium 이 열립니다. London, Berlin, NYC 와 함께 글로벌 Desertfest 네트워크의 한 거점이지요. Gnome 도 이 페스티벌의 자생적 라인업 중 하나입니다.

Gnome 의 King 은 혼자 튀어나온 사운드 가 아닙니다. Desertfest–Trix–Polderrecords 의 인프라 위에서 양산된 자연스러운 산물 에 가깝습니다.

진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증거

Gnome 의 King 을 들으면, 메탈이나 스토너가 꼭 심각해야 의미가 생기는 건 아니라는 걸 느낍니다. 무거움과 유머는 양립할 수 있고, 헤비한 리프 위에 익살을 얹어도 그 음악은 여전히 묵직합니다.

오히려 익살이 곡의 진지한 부분을 더 또렷하게 만듭니다. 코미디는 단조롭게 무거운 사운드를 환기 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환기된 뒤에 다시 묵직한 리프가 떨어지면, 그 무게가 더 분명해집니다. Red Fang 의 농담 같은 뮤직비디오 뒤에 결국 진지한 리프가 남는 것과 같은 원리지요.

Comedy Stoner 라는 라벨이 어색하게 들렸다면, King 을 한 바퀴 돌려 보길 권합니다. 중세 난쟁이들이 왕국을 점령하는 그 익살맞은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진다면, 이 앨범은 제대로 작동한 셈입니다.


본 글은 직접 듣고 연주해 본 인상에서 출발한 개인적 관찰입니다. 사후에 덧붙인 사실관계는 아래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참고

COLDSURF Pick #016 · King 리뷰 · Reviewed by
Stoner RockStoner Metal2022Polderrec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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