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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Written by Paul
September 26, 2025
나름 열심히 살았던 것 같지만
최근 6개월간은 인생에 있어 손에 꼽을 정도로 성실하고, 열심히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번 6개월이 더욱더 의미 있었다고 느끼는 점은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혹은 외부의 조건에 의해 내가 해야만 해서 했던 열심이 아닌,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이루어진 열심과 성실이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저 자신을 돌아보며 높게 살 부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 유한하듯이 혹은 불을 계속 만들어 내려면 어딘가에서 땔감을 계속해서 주입하는 작업이 필요하듯이, 이 반년(6개월)의 순수하고 행복했던 과정도 최근 어느정도는 다시 소강상태로 접어 들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최근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말이지요.
따라서, 과연 이 삶의 방향 자체가 제대로 된 방향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고민을 가지고 오늘을 마무리 할 즈음 문득 “회심”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꽂혔습니다.
회심은 저에게 있어 굉장히 어려운 단어였던것 같습니다. 과연 나에게 회심이란 가능 한 일인가 싶을 정도로 제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단어처럼 느껴지기도 했지요.
성인이 되고 나서 열심히 살았던 제 삶의 부분들을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군복무를 마치고 취업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취업하기 위해서 개발 실력을 쌓고 토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열심히 노력했지요. 그리고 원하던 취업을 한 뒤에는, 현업에서 종사하면서 더 높은 연봉과 더 좋은 환경과 더 훌륭한 동료를 만나기 위해서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나름의 성취의 과정을 거치면서 공허함이 저를 다시금 어려움에 빠뜨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회사가 아닌 개인으로써 증명을 하기 위한 노력들을 해보기도 했지요.
위와같은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열심히 살았고, 빠르게 시간도 지나갔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겪었던 방황의 과정들과 실패는 또 새로운 도전을 낳게 되었고, 다시 일어서기 위한 과정들과 성장을 포함한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거쳐 현재의 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결국, 이 몇 년의 과정을 겪으며 열심히만 살았던 나의 삶에서 한번쯤은 자신을 소강상태로 빠트리고 다시 제대로 된 방향으로 시선을 틀기 위한 “회심”의 과정이 필요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때까지는 나 자신을 위해서, 혹은 내가 더 잘 되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알게 모르게 계속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국, 사람이 의도적으로 끼워 맞춘 작업들은 언젠가 다시 자연의 흐름에 반하게 되고 결국 유한하지요.
사도 바오로의 회심, 사울에서 바오로가 되다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성인인 사도 바오로는 젊은 시절 그리스도교를 믿는 유대인들을 탄압하는 일에 앞장섰던 인물입니다.
또한 소위말해 그 당시 탄탄대로가 보장 되었던 전도유망한 젊은 인물이기도 했지요.
과연 사도 바오로는 어떤 일이 있었기에, 전도유망했던 속세의 삶을 뿌리채 벗어던지고 새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아마 일련의 과정을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시선을 틀 수 있었던 회심이 결국 사울(Saul)을 바오로(Paulos)로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단지 사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바오로라는 이름을 썼다고 해서 모든 “회심”의 순간이 완성되었던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회심”의 순간 이후, 이전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하여 수 많은 노력들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본 그 진리의 방향성을 뇌리에서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것이고, 그것을 삶을 통해 실천하려고 무수히 많은 길을 달리면서 자신을 갈고 닦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진리의 존재를 믿는 사람입니다. 또한 그 진리가 가르키는 방향성을 본 사람은 다시 이전의 삶의 방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아할 것이라고도 믿습니다. 회심을 누군가는 은총의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혹은 성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저는 현실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싶습니다.
“회심은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전혀 다른 방향의 진리를 보았기 때문에, 그곳으로 삶의 방향 자체를 돌리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회심의 시작이라고도 말이지요.
진리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황홀함과 희열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진리를 경험하기 이전의 삶을 돌아보며 깊은 후회와 탄식, 그리고 공허함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지요. 하지만 진정한 회심이 있다면, 그러한 공허함 자체가 오래가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회심 이전의 삶이 후회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올바른 방향성을 잡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한 공허함을 이겨내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회심이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회심은 “단순히 방향성 없이 열심히만 살았던 삶”에서 더 나아가 “올바른 방향으로 자신을 바로잡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사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공허함을 느꼈다고 해서 이전의 삶이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왜냐하면 이전의 삶이 존재했고 그 과거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비로소 “회심”이라는 순간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일단 진리의 옳은 방향을 보기만 한다면, 남은 것은 그 길로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요. 물론 그 길로 발을 내딛는 순간 하나하나가 탄탄대로는 아닐지라도 말이죠.
번아웃 증후군
요즘 현대 사람들이 많이 겪는 “번아웃 증후군”도 어떻게 보면 비슷한 맥락의 논리가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 사회에서 모두가 열심히는 살지만, 올바른 방향을 알아보는 경지에 이르는 것은 무수히 많은 시간과 경험이 뒷받침 되어야 도달 할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만이 그 올바른 방향을 보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제대로 된 자신만의 방향을 찾기는 현대 사회에서 생각보다 쉽지 않지요.
방향성을 찾지 못한 채, 열심히만 살게 되면 번아웃 증후군은 필연적인 존재로서 다가오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단순히 열심히, 혹은 회사나 사회의 틀에 벗어나지 않고 성공을 위해서만 달리려고 한다면, 방향성은 잃어버린 채 다시 유한한 사람의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고 그로인해 공허함, 우울함과 번아웃이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회심: 진리로 방향을 튼다는 것
진리의 길은 모두에게나 열려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진리의 길로 초대받지만, 그 길을 마지막까지 완주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지요.
그 진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하고, 고개를 돌린 방향대로 한 걸음 한 걸음 방향을 틀며 나아가는 것을 회심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그러한 회심은 요즘 말로 “Trade Off”가 존재하지 않나 싶습니다.
결국, 사도 바오로가 “다마스쿠스 회심”을 겪을 때 환시를 보고 사흘간 눈이 멀었던 것처럼, 정말이지 삶의 방향을 바꿀만큼 충격적인 사건이 삶을 통해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이 올바른 방향을 볼 수 있는 것이 가능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많이 잃으면 많이 얻는다”라는 말처럼, 회심의 사건을 통해 진리로 방향을 튼다는 것은 어떠한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이전의 삶을 잃어버리고 정말 값진 새 삶을 얻게되는 것이지요.
회심의 날
오늘, 즉 2025년 9월 26일 금요일이 저에게는 회심의 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사건이었는지 직접적으로 글로 풀어내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또한 이러한 회심이 결국 제가 위에 적어놓은 일련의 제 삶의 과정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하여, 왜 오늘을 회심의 날이라고 생각하는지 한 줄로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다만, 오늘 저는 명확하게 이전과 다른 삶의 방향을 보았습니다. 또한 방향성을 찾지 못했던 이전의 삶을 돌아보며 일정 순간 공허함을 느끼기도 했지요. 마치 사도 바오로가 사흘간 눈이 먼 것처럼 말이죠.
저는 모두에게 회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회심이 보편적으로 모두에게 필수라고 하기에는, 수많은 일련의 과정이 뒷받침 되어야 하기에 무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혹은 회심은 오히려 죄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회심은 어렵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듯이, 이러한 회심을 통해 나타나는 삶의 방향 전환, 그리고 그 이후에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도 어느하나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수십년 동안 고집했던 방식을 버릴수 있었고 방향을 틀었다는 것, 그로 인해 앞으로의 삶은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디모테오 서에 나오는 사도 바오로의 편지 내용으로 글을 마무리 지어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나는 이미 피를 부어 희생제물이 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가 왔습니다.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월계관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2디모 4,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