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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Paul
October 7, 2024
글을 시작하기 앞서, 나는 회고에 약한 편이다. 약하다고 하면 좀 부정적인 표현이 될 수 있겠으나, 뭐 마냥 틀린말은 아니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회고를 잘 하지 않았던 편이고, 칼날로 보면 날카롭게 다듬어지는 시간을 미뤄왔다고 할 수도 있겠다. 칼은 갈아야 제 역할을 잘 한다. 무뎌진 혹은 녹슬어지거나 때가 많이 묻은 칼은 그 때를 없애주는 시간을 종종 가져야 하지 않을까. 회고는 해당 역할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나의 칼을 잘 썼다면, 나의 칼을 어떻게 사용 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칼을 갈아 나가야 하는지 등등의 생각을 정리하며 칼을 재정비 해주어야 한다.
칼이라는 단어를 쓰다보니 좀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한데, 더 적당한 단어가 있다면 본문을 바꾸어보겠다.
이 글의 목적은 자신을 되돌아보며, 여러 세월을 거친 나에게 이끼가 끼지 않았는지에 대해 돌아보고 그 이끼를 청소해 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깨달았기 때문에 쓰는 것 임을 미리 서두에 거론하고 시작해보겠다.
나는 곧 6년차가 되가는데, 한번도 나의 커리어에 대해서 안식년을 가지며 돌아본 기억은 없다. 앞으로 나가기에 급급했고 그만큼 연차대비 실력과 경험은 쌓았으나, 이게 정말로 세상에서 의미있는 칼질을 할 수 있는 칼로 변모해가는지는 의문이 들었다. 따라서 조금 더 설명과 함께 커리어 전반적인 회고를 남겨보겠다.
새 칼을 받았다.
신입으로 혹은 신입 개발자로 직장 혹은 커리어로써 본업을 시작하는 것은 내가 학생 때 나무칼로 이것저것 시도해보던 것을 이제 정말 쇠로 된 칼로 바꾸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나는 조기 취업을 신청하여 2018년 11월 말에 회사에 입사하여 프런트엔드 엔지니어로 본업을 시작하였다. 어떻게 보면 그 때 당시의 나는 엔지니어보다는 개발자라는 말이 어울릴 수도 있겠다. 돌아보니 엔지니어라는 단어는 쉽사리 쓰이기에는 굉장히 무거운 단어이더라.
신입 개발자로써 쌓아갈 수 있는 역량에 대해서 많이 고민도 했던 것 같다. 머신러닝이 유행하기 시작 했을 때에 비싼 돈을 들여가며 패캠 오프라인 강의도 직장을 다니며 듣곤 했다. 돌아보면 듬성듬성하게 익힌 지식이 지금의 AI 시대가 도래 했을 때에 여러가지 이해도에 도움이 많이 되긴 하는 것 같다.
당시 어린 마음에 이 정도 개발을 하면 어느 회사에서든 개발하는게 어려운 점은 없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돌아보면 우물안 개구리가 할 수 있었던 생각이었고, 단순히 개발을 하는것과
사용자들이 쓸 만한 제품을 개발
하는 것은 천지차이였다.처음에는 암호화폐 거래소 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사수분이 굉장히 잘 하시는 분이었다. 그 분은 아마 지금 내 연차정도였을 것이다. (혹은 1년이나 2년정도 더 앞섰을 수도 있다!) 코드 자체를 굉장히 잘 쓰시는 분이었고, 어깨너머로 많이 배웠다. 지금도 첫 회사분들이랑은 종종 연락을 하고 만나기도 한다. 첫 회사를 좋은 동료분들과 함께 같이 다닐 수 있어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회사를 떠나면 남는 것은 사람밖에 없는것 같기도. 좋은 사람을 만나는 운도 어떻게 보면 천운이다.
당시에는 암호화폐가 한창 유행할 시기라서 회사가 잘 될 것 같았는데, 현재는 결론적으로 폐업을 한지 꽤 되었다. 커리어를 개발쪽에서 쌓아보신 분들이라면, 폐업 전에 분위기가 어떤지 잘 아실것으로 예상한다. 딱히 신입 개발자로써 커리어를 쌓기에는 좋지 않은 환경이라는 판단하에 더 규모가 있는 곳으로 이직을 했다.
숨겨둔 나의 칼날을 뽐내다.
내가 잘하는 것은 문제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해결을 신속하게 해나가는
길을 보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문장에서 “내가 문제 해결을 굉장히 잘 한다!” 라고는 적지 않았다. 다만 그 해결과정을 찾아가는 길을 보는 눈은 본능적으로 발달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장점은 남들이 고민하는 시간에 나는 본능적인 감각으로 실행에 돌입할 수 있다. 따라서 남들보다 빠르게 문제 해결에 가까워질 수 있다. 누군가는 개발을 감으로 한다고 하는데 틀린말은 아니다. “감으로만” 하는 것도 굉장히 위험하겠지만, “감 없이”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개발자로써 힘든 일이다.조금 더 규모가 있는 회사로 이직 했고, 해당 규모에 맞는 여러가지 시스템과 일들을 경험해보았다. 프런트엔드 개발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느정도로 카테고라이징이 되는지 체감을 할 정도로 여러가지 일을 해본 것 같다. 일의 체계나 바운더리, 혹은 일머리를 어느정도 쌓게 되었다. 시스템 적으로 경험하며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길을 보는 나의 장점을 잘 발휘 할 수 있었던 환경이었고, 아직도 해당 회사에서 나의 칼날을 뽐낼 수 있는 기회를 받았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근데 여기서부터 회고를 한번 했더라면 어떨까 싶다. 회고없이 자꾸 때가 낀 상태로 칼날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조금 빠른 연차이지만 기술적으로 고여가는 느낌이 없지 않아 들기 시작했다. 상위 1%에 속하는 잘하시는분들에 비해서 무언가 계속 뒤처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회고없이 나의 커리어를 또 우직하게 이끌어 나갔다.
정말 제대로된 문제 해결을 하려면, 관성에 이끌리는 내가 편한 해결방식이 아닌 한 단계 더 성장을 해야 한다는 느낌이 이때 부터 들기 시작했다.
칼날보다는 칼집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내가 표현한 칼집은 “문화”이다. 기업문화인데, 내가 맞는 회사는 어디일까?라는 고민을 가지고 고민에 대한 관심을 안에서 밖으로 돌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돌아보면 복합적인 문제이긴 하다. 안과 밖, 모든게 잘 맞아떨어져야 오랜 기간 근속도 하면서 커리어를 통한 성장이 가능한게 사실이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문화라는 것은 쉽사리 쓰일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문화는 어떻게 보면 전통적으로 상위 계층들이 하위 계층이 하지 못하는 것들을 자신들이 모여서 해 나가는 행위를 대변하는 단어가 아닌가 싶다.
“우리 회사는 이렇지 않아요” 혹은 “우리가 가진 것은 다른 회사가 가지지 못한 이러한 것들이 있어요” 등등으로 표현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문화라는 것은 “관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관습을 깨뜨리는 행위를 하는 자들이 하는 행위들을 오랜기간 지속하면 그것을 “문화”라고 정의하는 것 같다. 따라서 요즘은 회사 소개서를 보거나 JD를 볼 때에, 문화라고 표현하는 것이 관습에 지나지 않는지, 혹은 실제로 그걸 실천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실천하고 싶은 것인지 조금 더 유심하게 살펴보는 것 같다.
아무리 유심하게 봐도 사실 그 회사에 들어가 보기 전까지는 잘 모르는게 사실이다. 따라서 들어가보기 전에 여러가지 많이 고민해보자. 한번 들어가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뛰쳐 나오긴 쉽지 않다.
칼날을 갈다.
안과 밖, 모두 살펴본 느낌이었다. 이제는 다시 나의 안쪽을 들여다보며 나의 강점을 또렷하게 해 나가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내가 잘하는 것, 그리고 내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미래를 그려나가지 않으면 앞으로는 살아남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여있지 말자, 털어내자. 그리고 간직해야 할 것들만 챙겨서 앞으로 나가자. 그렇지 않으면 뒤쳐진다. 기술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나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한번 내려보는 것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최근 이력서를 다시 작성했다. 이직을 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번도 나의 이력서를 제대로 작성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어쩌면 회고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나의 이력서는 여기에서 볼수있다! 해당 이력서는 토스 이현섭님의 이력서를 많이 참고했다. 정말 잘 써진 이력서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좋은 이력서를 공개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력서를 고쳐나가다보니 드는 생각은, “이력서를 대충 쓰면 내가 가는 회사도 대충 갈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었다. 이력서에는 하드스킬적인 객관적인 부분도 나열이 되어있어야 한다. 다만 그 안에서 “나는 어떤사람이다”라는 냄새도 조금씩은 풍겨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대기업용 이력서를 작성하고 나만의 캐릭터가 없다면, 대강대강한 회사에서 불러주면 나와 맞는지 확인을 하지 않은 채로 혹은 내가 들어가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확인이 되지 않은 채로 이직을 하게 된다. (내 경험상 그렇다) 그렇게 되면 장기근속이 힘들어지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직을 생각하게 되더라.
이것 또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개발자의 장기근속 커리어는 “직장인으로써의 개발자”와 “엔지니어로써의 개발자”로 나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직장인으로써의 개발자는 내부 사정에 빠삭하다. 조금 더 안으로 굽는 역할이고 일 자체가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규율에 거스르지 않는 것을 굉장히 잘하는 성향이 아닌가 싶다. 반대로 엔지니어로써의 개발자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일은 일이고, 결론적으로 유저에게 얼만큼의 ROI를 주는가를 바탕으로 모든 일을 진행 하는 성향이 강하게 있는 것 같다. 오랜기간 회고없이 근속하게 되면 안으로 굽는 역할들이 되어가는 것도 같다. 뭐 나쁘거나 틀린 것은 아닌데 (우리는 결국 직장인이기 때문에), 해당 부분에 너무 고인물이 되면 주변에 반발감을 사는 사람들도 꽤 많았던 것 같다. 이전 직장에서 만난 한 마케터분은 본인이 그렇게 고이지 않기 위해서 항상 경계하신다고 하셨다. 굉장히 훌륭한 분으로 기억한다. 결론적으로 고이게 되면 고집만 세진다. 고집이 세지면 내부의 일을 잘하기 위한 일들에게만 집중되는 것 같기도 하다. 유저의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튼 말이 길어졌고 좀 새는것 같아서 여기서 마무리.
요즘 나는 칼날을 갈고 있다. 퇴사하고 박차고 나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차피 그러기도 쉽지 않다.) 나만이 만들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보려고 차근차근히 쌓아 나가고 있다. 주니어 때에는 회사에 기여를 하는 것이 쌓이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나만의 브랜드를 쌓아가는 셀프브랜딩에 집중하면서 차근차근히
온전한 나의 것
즉, 온전한 나의 자산을 쌓아가고 있다. 회사는 떠나면 그만이다. 그 안에 내 것은 1도 없다. 하지만 나의 것은 내가 죽기전까지 가지고 가는 나만의 자산이다. 요즘은 정신차리고 다시 여러가지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보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 시니어의 연차에 다가서는 만큼 한번 안식년 아닌 안식년을 가지며 다음 쌓아나갈 커리어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마치며
딱히 기술적으로 정리된 글은 아닌 것 같다.
한번 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고, 무언가 진심을 다해 내 것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의지가 강한 시기다.
현재도 자신의 것들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분들에게 화이팅을 건네고 싶다.
또한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는 모든 메이커 분들에게도 따뜻한 화이팅을 건네고 싶다.
평소 좋아하는 개발자인 한재엽님께서 남긴 글을 첨부해보며 글을 남겨보도록 하겠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습니다)
제품에서 팀으로 팀에서 조직으로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면서 느꼈다. 엔지니어이기 전에 팀원으로써, 제품을 만드는 일원으로써 역량도 중요하다는 것을. 결국 투입되는 리소스 대비 최대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경제학에서 의사결정하는 흐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컴퓨터 공학,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경제학이라고 구분지어 놨을 뿐 일을 잘하기 무언가는 경계가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