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개인의 관찰 기록입니다. 인용한 정보·수치 가운데 일부는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학계의 정설과 다를 수 있습니다.
들어가며
저는 90년대에 태어나, 00년대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입니다. 지금은 개발자로 일하고 있어요. 그다지 좋은 대학을 나오지도, 누구나 알 만한 회사를 다니지도 않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상식이 깨져 가고 있다는 감각 을 자주 느낍니다.
저는 그렇게 많이 배운 사람도, 학문적으로 뛰어난 사람도 아닙니다만, 상식선이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만은 분명히 받습니다.
교과서와 어르신들 사이의 간극
저는 그래도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좀 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운 역사와, 주변 어르신들께 직접 들은 이야기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났습니다.
어떤 소설을 책으로 읽었는데, 막상 영화에서는 그게 잘 표현되지 않는 것 — 그 간극과 비슷합니다.
반면, 호주는 교과서에서 조상 중 일부가 영국의 죄수였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흔하게 알려 준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현대 호주에서는 그 사실을 꼭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개척 시대의 상징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약 400만 명의 호주인이 죄수 이송자와 혈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추정도 있고, 학교에서는 그 죄수들이 호주 식민지 건설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일반적으로 가르친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 교과서도, 우리가 지나온 시대를 좀 더 있는 그대로 다뤄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함은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시대적 맥락을 그대로 보여 주는 일이지요.
미디어 시대의 정보
현대는 미디어 시대입니다. 내가 직접 CD나 Vinyl을 사서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추천해 줍니다.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그냥 현재 시대가 그래요. 그만큼 미디어와 SNS의 영향력이 너무나도 큽니다.
문제는, 정보를 고르는 행위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무엇을 볼지, 무엇을 들을지, 누구의 말을 신뢰할지 — 이 선택을 우리는 점점 알고리즘에 위임하고 있어요.
인터넷에는 편파적인 가짜 뉴스나, 편 가르기를 부추기는 듯한 댓글이 적지 않습니다. 누가, 왜 그렇게 하는지까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상식적이고 평범한 시민이라면, 그런 글을 일부러 양산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느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보의 결이 누군가에 의해 흔들릴 가능성 정도를 막연히 우려합니다. 무언가를 단정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로 인해 우리의 일상적 상식이 깨지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사상, 그리고 자유
알고리즘이 정보를 고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느 순간 우리의 사고에도 영향을 미칠 거예요. 추천된 것만 보고, 추천된 것만 듣고, 추천된 것만 믿게 되는 흐름이지요.
사상과 자유는 그만큼 중요합니다. 내가 무엇을 보고 듣고 생각할지를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감각 — 그게 결국 자유의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상식이 흔들릴수록, 일상 속의 작은 솔직함이 더 필요해진다고 느껴집니다. 교과서가 어르신들의 이야기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도록. 알고리즘이 추천한 것 너머의 것도, 한 번씩은 직접 골라 보도록. 그런 작은 습관들이 모여서, 결국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의 모양을 지키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