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쌓아봤니?
철학이란 무엇일까? 나도 불과 좀 전만해도, 철학이란 단어는 허세라고 생각했었다. 다만, 그런 생각은 자신과 부딪혀 보지 않은 사람이 하는 생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철학은 멀리 있지도, 가까이 있지도 않다. 잊으려고 해도 내 몸 근처에 붙어있고, 쫓으려고 하면 오버액션으로 경고를 먹는다. 결국 내 근처에 있으면서, 나의 몸에 가까이 달라 붙어 있진 않은 그런 나이테 같은 존재인 것 같다.
당신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나요? 매일 골똘히 생각하는 그 무언가는 무엇인가요? 가장 소름이 돋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오그라들지 않게 자신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철학이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철학은 나만의 주관이자, 다른 사람과 나를 구분 지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브랜드, 만들어봤니?
브랜드란 무엇일까? 나도 불과 좀 전만해도, 브랜드란 단어는 허세라고 생각했었다. 다만, 그런 생각은 자신과 부딪혀 보지 않은 사람이 하는 생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브랜드와 철학은 깊은 연관이 있다. 나만이 가진 철학을 상품화 할 때에 녹여내면 그것이 브랜드가 된다고 생각한다. 브랜딩 전략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상품화와의 밸런스가 잘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품이 애초에 별로라면, 철학을 부여할 가치조차 없어진다. 상품은 좋은데, 철학이 없다면 값싼 이미지의 브랜드가 될 것 같다.
자본주의, 철학, 상품 그리고 브랜드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되지 않으면 가치가 0으로 판단된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실제로 트랙션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에 대한 가치는 0이다. 안타깝지만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상에서는 그러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나의 철학은 추상성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언어로 정의하기보다는, 작품이 주는 느낌에서 느끼는 철학과 같이 말이다. 구구절절 설명하기 보다는 그 작품이 주는 한방을 즐기고, 서정적인 멜로디보다는 듣자마자 소름이 돋는 펀치라인을 가진 멜로디를 즐긴다. 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범위와 장점과 비언어적인 요소가 표현할 수 있는 범위와 장점은 애초에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후자를 더 선호 할 뿐이다.
이렇듯 개개인마다 취향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취향에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미되면 철학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 하나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어떤 것. 그것을 지켜나가며 행동으로 보여줄 때 비로소 철학은 완성된다고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철학은 논리와 이론에 가깝다. 형상이 없고, 실제 트랙션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서는 취향을 바탕으로한 견고한 철학을 상품화 해서 가치로 환산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상품일 것이다.
상품이 대중들에게, 혹은 더 나아가 인류의 보편적인 공감대를 얻게 되면 그것이 브랜드가 된다고 생각한다.
우산, 그리고 유행 (트렌드)
나는 가끔 비가 올때 우산을 쓰고 있으면 이런 생각을 했다. "왜 가전제품, 옷, 신발 등은 유행을 타는데 우산은 비교적 몇 세기 동안 비슷한 모양으로 남아있는 걸까?"라는 생각 말이다.
영국 신사들이 과거부터 쓰던 장우산과 현재 현대인들이 쓰는 장우산은 상식적으로 거의 바뀐게 없다. 다만, 기능성 부분에 있어 거꾸로 접는 우산이라던지 이런 부분들은 개선이 된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10년전 영상을 보면, 바로 느낀다. 유행이 바뀌었다는 것을. 과거 2000년대 초반의 샤기컷과 긴 구렛나루는 이제 촌스러움의 상징이 되었다.
반면,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겠으나 우산은 세월이 지나도 유행을 비껴가는 몇 안되는 상품이라 생각한다. 우산과 같은 상품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산은 이미 완성형이다. 경험이 아닌 이미 인프라로 자리잡은 것이다. 유/무가 중요하고 그것을 사용했을 때 얻는 경험이 중요하진 않은 것이다. 이미 완성된 인프라이기 때문에 그 위에 무언가를 추가하게 되면 과함이 된다. 망치, 가위, 숟가락, 젓가락, 포크 등도 마찬가지다. 경험이 아닌 보편적인 인프라로, 즉 수단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반면 대부분의 철학과 브랜드는 우산과 반대일 것이다. 대부분 유행을 타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이 부분에서 한번 더 허무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기에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기에 허무함에 빠질 순 없는 것 같다. 내가 살아가면서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언가는 항상 존재하기 때문일까. 그것이 행동과 결합되어 오랜시간 쌓이면 언행일치로 증명되는 그 무언가가 언젠가 누군가의 공감을 사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