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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 Mind

과연 지금 나는 나에게 맞는 옷을 입고 있는가?

옷장 안에 가지런히 걸려 있는 옷들
Photo: Adrienne Leonard · Unsplash

행복을 찾기보다는, 내가 왜 지금 불행한가를 찾는 것이 더 빠르다.

By @coldsurf2026.04.16Mind Magazine@coldsurf사람이 직접 쓴 글

지속되는 찝찝함을 인식하다

몇 년전 부터인가 계속해서 지속되는 찝찝함이 있었다. 나는 이 찝찝함을 애써 외면하고, 별것 아닌 것 취급 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 사라지는 찝찝함도 있겠지만, 무엇인가 나를 계속 뒤에서 붙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 문득 들었다. 인식하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마주하기 싫었던 것 같다.

이유는 그러한 현실을 마주하면 내가 무턱대고 그려왔던 이상적인 루트를 버려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인 것 같다.

맞는 옷, 안 맞는 옷

누구든지 자신에게 맞는 옷이 있다. 캡 모자가 어울리는 얼굴형을 가진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오히려 캡 모자보다는 챙이 있는 페도라가 어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캡 모자는 어울리지만, 페도라는 어울리지 않는 얼굴형도 있다. 이렇듯 옷, 모자 등 큰 범주의 카테고리는 존재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자신에게 맞는 것이 있고 아닌 것이 있다. 인생을 살아가며 커리어를 쌓고,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도 여러가지의 옷을 입어보며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아가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만의 옷을 찾는 과정의 답은 멀리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입어보면 본능적으로 안다. 오늘 내가 입은 옷, 혹은 내가 사려는 이 옷이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 혹은 어울리는지 아닌지. 남들이 어울린다고 좋아하지만, 막상 내가 맘에 들지 않는 색상의 옷이 있을 수 있다. 입다보면 좋아지겠지만, 결국 어느정도 지나면 사놓고 입지 않는 옷이 되어버린다.

좋은 옷이라고 비싼 돈을 주고 구매 했지만, 어느 순간 일년에 몇 번 입지 않는 옷들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기 때문일 것이다. 입게 되면 무엇인가 불편하다.

반면, 나에게 맞는 옷은 본능적으로 손이 간다. 단순히 편한 옷이 아닌, 나를 위해 준비된 옷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든 큰 고민하지 않고 입으면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옷이 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밖에 나가면, 괜히 눈치가 보인다. 하지만 맞는 옷을 입고 밖에 나가면, 더이상 그러한 외부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는 나를 발견한다.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긴 기간동안 인생에서 찝찝함을 느끼며 살아가다보면, 현실적인 벽에 자꾸 부딪힌다. 가장 괴로운 것은 그 찝찝함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몰라서 계속 악순환이 된다는 것. 그러한 찝찝함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부딪혀 봐야 하는 것 같다. 실행해보면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행복을 찾기 보다, 왜 불행한가를 생각해보자

행복을 좇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나에게 현재 지금 부여되지 않고 갈망하는 것을 찾아내면 되기 때문이다. 소위 말해 도파민을 찾으면 된다. 짜릿한 것,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행복을 좇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선택된 소수만 가능한 일인것 같기도 하다. 대부분은 환경적인 문제, 재능의 문제, 시간의 문제 등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결국 또 행복을 찾다가 불행해지는 악순환에 부딪힌다.

나도 이때까지 무턱대고 행복함을 무의식적으로 좇아서 왔던것 같다. 그러다보면 중심에 "나"라는 사람이 사라지고, 현실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것도 배제되기 일쑤다. 행복은 얻고 쟁취하는 것이 아닌, 현재 나의 상황에서 불행을 가져다 주는 것을 제거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다. 결국 지금 내가 입고있는 옷이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것을, 그래서 불편함을 느꼈다는 것을 인식하는 과정인 것이다.

내면을 보라는 어려운 말 대신, 가장 자연스러운 나를 찾기

요즘 유튜브를 보다보면 추천 영상으로 행복해지려면 혹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려면 "~해라" 라는 유튜브 영상들이 많다. 일리가 없는 영상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 영상을 준비하면서 논리를 찾아가기 위해 영상제작에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다만, 내면을 보라는 혹은 내가 지금 좋아하는 것을 찾으라는 이런 제안들은 오히려 혼란을 가중 시키는 것 같다. 중요한 건 자신의 부족한 면을 보게 되면 안 된다는 것. 결국 또 그것을 좇다가 번아웃 무한루프에 빠지고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내면을 보고 자신의 부족한점을 채워나가려 하는것은 힘들다. 고되다.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종류든 의도적인 자기계발은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이다. 반면, 내가 진짜 좋아해서 혹은 흥미가 있어서 하는 일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하게 된다. 그 와중에 물론 노력도 하면서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고통도 수반된다. 하지만, 이때 느끼는 고통과 그 노력의 중간 과정들은 의식해서 내가 자기계발을 할때에 비해 훨씬 무의식적으로 느껴지기에, 고통이 덜하다. 즉, 고통이 고통이 아니게 된다. 음악가가 떠오른 영감을 그대로 악상에 옮기기 위해 밥먹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악기를 집으러 가는 것 처럼 말이다.

나는 무엇을 할때에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인가? 자기전에 내일 이것만큼 해봐야지 하는 것이 무엇인가?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동기부여가 되고, 그 생각은 하루종일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질리지 않는 것이 무엇일까? 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같다.

헛된 것은 없다

요즘 아무것도 헛된 것은 없다 라는 느낌을 많이 느낀다. 내가 지금 불행한 것도,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 불행을 느꼈기 때문에 나아질 수 있는 것. 결국 그 불행은 헛되지 않게 된다. 내가 지금 공부를 못해서 불행하다면, 굳이 공부를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부를 못해서 불행한게 아니라, 공부를 잘하는 것 밖에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없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복잡 미묘한 느낌을 느끼기 시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사실 말장난 같기도 한데, 조금 더 구체적인 논리는 다음과 같다.

  • 옷을 입었다
  • 무엇인가 알 수 없이 불편하다
  • 이 옷을 계속 입어야 할 것 같다. 왜냐면 갈아입는 기회비용이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 하지만, 나에게 맞는 옷으로 갈아 입고 보면 안다. 내가 불편했던 이유가 그 옷에 맞지않는 나의 체형이 아닌, 내가 단지 맞지 않는 옷을 입었을 뿐임을

나는 이것을 깨닫기까지 수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깨달아보니 느낀다. 헛된 것은 없다.

인생의 목적은 나에게 맞는 옷을 찾는 과정이 아닐까?

사람은 결국 죽는다. 이것은 현재 이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현실적인 논리이기 때문이다. 엔드게임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엔드게임까지 모든 카드를 펼쳐놓고 생각해보자.

그럼 결국 죽고나면, "돈, 명예, 지위" 등이 큰 의미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논리다. 사후세계를 생각하자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허무주의에 빠져 살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지금 내가 좇는 것이 눈을 가리고 방향성 없이 걷는 길이 아닌지 생각해보자는 것.

물론, "돈, 명예, 지위"는 짜릿하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짜릿함에 나의 인생을 던져버릴 셈인가?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결국, 나는 인생의 가장 순수한 가치는 거기에 있지 않다고 결론 지었다. 금도 순금에 가까운 순도가 있고, 순금과 더 멀어지는 불순한 순도가 있다. 점점 불순해지면, 그것은 금이라고 정의 할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한정된 시간을 사는데 그 시간동안 코어를 좇을 것인가, 아니면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쟁취하며 살 것인가. 그것은 본인의 선택이 될 것이다. 어쩌면, 선택이 아닐 수 있다. 선택이란 A외에도 B라는 옵션이 있음을 깨달을 때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아지경에 빠질 수 있는 것, 그만큼 나에게 편안한 것, 그만큼 나에게 오래가는 것을 찾는 과정이 인생의 순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따라올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헛된 것은 없다 (2)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그것의 가치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꽤나 긴 기간동안 나는 내가 무엇 때문에 찝찝했는지 모른채, 남들이 보기에 좋아보이는 것을 좇아서 살았던 것 같다. 몇 년이라는 긴 시간이었다. 인생 전체를 두고보면 짧은 시간일 수 있다. 하고싶은 이야기는, 그 시간도 헛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에게 불행을 가져다 주는 요소를 없애다 보면

대부분 나에게 불행을 가져다 주는 요소는 밖에 있지 않았다. 모두 내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마음의 상태, 어떤것을 좇으려는 욕심. 더 나아지기 위한 내면의 노력 등 말이다. 그러한 요소들을 없애다보면, 마음 속 허세가 사라진다. 더 이상 인정받고 살아남기 위한 삶이 아니게 된다. 물론, 생계를 유지하며 서바이빙 하는 것은 중요하다. 잘 살아남아야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다. 부디 제어의 역전이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

순도 100%

마치며, 이제부터는 순도 100%의 인생을 좇으려 한다. 나에게 맞는 것과 아닌 것을 30대 초반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 같다. 20대 초 중반 때에는 어떤 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 구나 라는 것을 배웠던 기간이었다. 20대 후반에는 내가 어떤 것들을 하면 불행하게 되는지 배웠던 기간이었다. 30대 초반은 이제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진정 나에게 맞는 옷을 찾아가는 과정일 것 같다.

더이상 비싼 옷, 좋아보이는 옷이 아닌. 실용적인 나에게 꼭 필요하고 맞는 옷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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