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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 Mind

덤블도어에게 배우는 모두에게 유익한 지략

오래된 책들로 가득 찬 높은 도서관 서가
Photo: Ahmet Yüksek · Unsplash

공동선을 생각하라

By @coldsurf2026.05.02Mind Magazine@coldsurf사람이 직접 쓴 글

해리포터 죽음의 성물 파트 2에서는 세베루스의 죽음과 함께 그의 눈물을 펜시브에 투영해봄으로써 이때까지 해리를 둘러 싸고 있던 내막(?)이 모두 보여집니다.

이때 모든 큰 그림의 설계자는 다름아닌 덤블도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해리에게 볼드모트의 영혼 일부가 들어갔을 적 부터, 해리가 죽어야만 하는 이유까지. 해리포터 시리즈의 주요 축에는 모두 덤블도어의 지략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세베루스

세베루스는 해리포터에서 나오는 등장인물 중 해리와 유일하게 1촌급으로 묶여있는 몇 안 되는 인물입니다. 세베루스는 어린시절 해리의 어머니인 릴리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릴리가 해리의 아버지인 제임스 포터와 결혼을 한 후 해리를 갖게 된 이후에도 릴리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포기하지 않았다기 보다는 일생의 사랑을 여전히 간직한 채 한 마음으로 릴리를 잊지 못한, 어떻게 보면 비극적이면서도 극진, 순수한 사랑의 주인공 이지요.

하지만, 볼드모트의 침략으로 인해 제임스와 릴리는 죽음에 이르게 되고 그 사이에서 릴리를 사랑했던 세베루스는 자연스럽게 살아있는 인물 중 해리와 가장 가까운 인물로 분류됩니다.

릴리의 사랑스러운 모습과, 제임스의 장난끼도 갖고 있는 해리를 보면서 세베루스는 릴리와 제임스 모두를 투영하며 해리를 지켜봐왔을 것 입니다. 따라서 해리를 완전히 품기에는 꽤나 부담스럽지만, 그렇다고해서 해리를 완전히 미워하기에도 어려운, 그런 상대였을 것 입니다.

또한 볼드모트 영혼의 일부가 들어간 존재이기도 하니, 정말 세베루스에게는 해리가 일생일대 트러블적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랑,

해리를 보며 여러 컴플렉스를 경험하는 세베루스는 그럼에도 어른의 사랑을 실천합니다. 펜시브에서 보여진 그의 패트로누스는 여전한 릴리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암사슴입니다.

이렇듯, 세베루스는 릴리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해리를 지키는 선택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덤블도어와 협력하며 그의 계획에 깊이 관여하게 됩니다.

덤블도어, 생명력을 가진 지략가

세베루스가 꽤나 감정적인 공동선을 보여주었다면, 반대로 덤블도어는 이성적인 공동선을 보여줍니다.

호그와트의 교장으로써 오랜기간 활동했던 그는, 스네이프 교수, 릴리, 제임스 포터, 해리 포터까지. 모든 인물을 제 3자로써 관찰하며 때로는 간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던 인물이지요. 또한 뛰어난 지략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공동선을 추구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결국, 볼드모트는 무너집니다. 다만, 볼드모트는 해리 혼자와 싸운것이 아닌, 덤블도어와 같은 공동선을 향하는 모두와 싸운 것이 되지요. 이 과정에서 제 3자로써 간접적인 개입이 가능했던 뛰어난 지략가 덤블도어는 볼드모트라는 공동선을 위협하는 존재를 이겨내기 위한 큰 그림을 모두 설계합니다.

그의 지략은 단순히 좋은게 좋은 그러한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포함하여, 성숙한 어른들의 희생이 따라야만 하는 전략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성숙한 어른의 후대를 위한 희생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펜시브에서 투영된 기억에서는 세베루스에게 자신을 꼭 죽여달라고 설득하며, 그에 대한 이유를 이야기 해줍니다. 또한, 왜 해리가 뱀과 이야기 할 수 있는 악마의 재능을 받은 것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 세베루스의 죽음으로 인해 이 펜시브를 투영하는 해리가 깨달음을 얻기까지. 결국 해리가 자신을 오롯이 희생할 수 있었던 순간까지. 모든 의사 결정의 원인과 결과에서 덤블도어가 빠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 해리는 세베루스의 죽음으로 인해 펜시브에서 그의 눈물을 투영하며 모든 큰 그림을 알게되고, 성숙한 어른의 희생을 깨달으며 자신도 모두를 위해 희생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실행합니다.

생명력을 가진 전략, 아닌 전략

볼드모트와 덤블도어는 모두 뛰어난 지략가 겸 위대한 마법사입니다. 다만 그 둘의 차이는 “생명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명력이란 무엇일까요? 우리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끌게 하는 말들은 단순히 옳기만 한 말은 아닐 것입니다. 다시말해, 생명력을 가진 말을 들으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볼드모트와 덤블도어의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볼드모트는 위대한 재능을 받았음에도, 공동선을 위한 생명력을 추구하지 않았고 결국 그 힘에 영혼을 팔아버리고 맙니다. 개인의 능력과 단체를 위한 공동선 사이에서 그는 개인의 능력을 택하게 되지요. 이로인해 그의 전략은 모두 볼드모트 개인을 위한 이득이 되는 전략으로 변질되고, 모두가 그를 ”My Lord”라고 부르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그를 등지게 됩니다.

반면 덤블도어는 모두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마법사로 표현됩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능력 자체를 쫓기보다는 사랑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를 위한 공동의 선을 쫓았기 때문이지요. 그로인해 그는 단순히 능력 대 능력으로 맞서 싸우는 단순한 지략보다, 모두에게 사랑을 깨닫게 해 줄수 있는 희생이 밑받침된 지략을 택합니다. 결국 단순히 볼드모트 세력을 몰아낸게 아닌, 호그와트에 다시는 볼드모트와 같은 절대악이 나올 수 없는 환경 자체를 구성해버리지요. 그 증빙이 바로 해리가 가장 큰 힘을 가진 딱총나무 지팡이의 주인이 되었으나, 그 지팡이를 부러트리고 다시는 사용할 수 없게 만들게되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생명력을 가진 지략을 통해 모든 것이 완성된 것 입니다.

옳은 말과 생명력을 가진 말

여러분은 옳은 말을 통해 상대방에게 나의 우월함을 뽐내기를 좋아하시나요? 아니면, 당장은 나를 희생하지만 옳은 말이어도 잠시 포기하고 진정 남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시나요?

옳은 말을 하는 것은 비교적 쉽습니다. 다만, 왜 우리는 모두가 교육받은 대로 옳은 일을 하는 것 같은데 분쟁이 끊이지 않을까요? 왜 옳은 말로 오랜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왜 옳은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소중한 사람들을 짓밟는 것으로 끝날까요.

그것은 바로 덤블도어와 같은 공동선을 바탕으로한 행동이 아니어서가 아닐까 합니다.

지금 당장은 나를 희생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더 큰 그림을 보고 공동의 선을 좇는 것. 그것이 진정 성숙한 어른이 되는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후대에게 영원한 깨달음을 주는 것은 힘이 아닌, 사랑임을.

이 글은 지구장 신부님인 김완석 시몬 신부님의 성소주일 토요일 저녁 미사 강론 내용을 바탕으로 상당부분 작성 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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