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하다." 요즘 이 말은 칭찬이 아닙니다. 댓글창에서 누군가를 비꼴 때, 어떤 콘텐츠를 비웃을 때 쓰이지요. 2024년 미국에서는 월마트와 포드, 로우스, 할리데이비슨, 존디어, 잭다니엘스까지 거대 기업이 다양성 프로그램을 줄줄이 접었습니다. 불씨를 댕긴 건 활동가 로비 스타벅(Robby Starbuck)의 SNS 불매 압박이었고요. 명분은 다들 비슷했습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흥미로운 건, 같은 단어가 한때는 정반대 뜻이었다는 점입니다.
이 글은 그 일생을 따라갑니다. 가능한 한 날짜와 출처를 함께 적었습니다. 한 가지만 미리 밝혀둘게요. 이 계보에는 학자들끼리도 의견이 갈리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런 갈림길에서는 어느 쪽이 더 정확한지도 함께 적었습니다.
시작은 '당 노선'이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다(politically correct)'는 말의 뿌리는 의외로 멉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이 말은 소련 공산당의 '당 노선(party line)'을 충실히 따른다는 뜻의 기술적 용어였습니다. 1930년 1월, 공산당 기관지 The Communist 에 모스크바 레닌학교 학생들을 가리켜 처음 인쇄됩니다. 의미는 "당 교리에 충실하다"였지요.
칭찬이었습니다. 적어도 그때는.
곧 흥미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1934년, 뉴욕타임스 는 나치 독일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의견을 가진 순수 아리아인"에게만 취재를 허가한다고 보도합니다. 어제는 소련을 가리키던 말이, 오늘은 나치를 가리킵니다. 진영은 정반대인데 쓰임은 똑같았습니다. 정해진 노선이 있고, 거기서 벗어나면 안 된다. 이 말은 처음부터 그 한 가지를 가리켰습니다.
자조의 시대
현대적 의미의 첫 용례는 1970년, 흑인 페미니스트 토니 케이드 밤바라(Toni Cade Bambara)의 선집 The Black Woman 에 등장합니다. "남자가 정치적으로 올바르면서 동시에 쇼비니스트일 수는 없다." 1970년대 미국 신좌파는 이 말을 자기 진영을 비꼬는 데 썼습니다. "너 참 '정치적으로 올바르'시네." 지나치게 교조적인 동료를 향한 농담이었지요. 칭찬이 아니라, 자기반성의 반어였습니다.
데이터도 이를 받쳐줍니다. 한 연구(Magnus Ullén, 2024)에 따르면 1970년대 이 말의 용례 1/3이 페미니즘 저널에 몰려 있었고, 그중 대부분이 Off Our Backs 단 한 곳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이 반어는 추상적인 사상사가 아니라, 페미니즘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현장에서 다져졌습니다.
여기서 투명하게 짚을 게 하나 있습니다. 방금 인용한 연구는 "1980년 이전엔 반어적 용법이 없었고, 1982년 바너드 칼리지의 섹슈얼리티 학회에서 비로소 탄생했다"고 꽤 강하게 주장합니다. 하지만 다른 다수 출처는 이를 반박하지요. 이미 1932년 공산당 지도자 해리슨 조지가 따옴표를 붙여 비꼬듯 썼고, 1970년대 Off Our Backs 에도 반어가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바너드 학회는 반어의 탄생 이 아니라 정점 으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작은 차이 같지요. 하지만 "언제 시작됐나"를 한 사건에 가둬 버리면, 그 전사(前史)가 통째로 지워집니다.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 말은 처음부터 내부에서 벼려졌습니다. 바깥의 적이 만든 게 아니라, 같은 편끼리 서로를 가리키며 다듬은 말이었습니다.
무기가 된 순간
전환점은 1980년대 말입니다. 미국 보수가 이 말을 집어 들어 비하의 무기 로 뒤집었습니다. 앨런 블룸의 The Closing of the American Mind(1987), 리처드 번스타인의 뉴욕타임스 기사(1990)가 도화선이었지요. 비판이 향한 곳은 대학가의 다문화 커리큘럼, 페미니즘, 소수자 연구였습니다.
효과는 숫자로 드러납니다. 'political correctness'의 언론 인용은 1990년 70건에서 1991년 1,532건, 1994년엔 7,000건 이상으로 치솟았습니다. 1년 만에 스무 배가 넘습니다. 1991년 부시(George H.W. Bush) 대통령은 졸업식 연설에서 이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 불렀고, 그렇게 이 말은 주류 정치 담론에 올라섰습니다.
좋은 말이 욕이 되는 데 60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그 뒤집기에는 별도의 서사가 따라붙습니다. 1997년 헤리티지 재단 공동창립자 폴 와이릭(Paul Weyrich)은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PC를 '발명'했다"는 이른바 '문화적 마르크스주의' 프레임을 퍼뜨립니다. 균형을 위해 분명히 적자면, 이 서사는 학계에서 대체로 음모론으로 분류됩니다. 한 개념의 기원을 적 진영의 음모로 설명해 버리면, 그 개념과 대화할 이유 자체가 사라지니까요.
왜 생겼을까
여기서 한 번 멈춰야 합니다. 이 말이 가리키던 실체 는 무엇이었을까요.
출발은 분명 선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시민권 운동, 페미니즘, 다문화주의를 거치며, 오래 배제됐던 사람들이 일상의 언어에 새겨진 차별을 걷어내려 한 흐름이었습니다. 사회학자 마틴 스펜서(1994)는 이를 단순한 '언어 예절'이 아니라, 전후 배제됐던 집단이 새로운 정체성을 구성 하려는 노력으로 봤습니다.
법학자 제임스 보일(Duke Law, 2000)은 한발 더 나아갑니다. 그는 PC 논쟁이 "독서 목록과 캠퍼스 규칙"을 둘러싼 사소한 다툼이 아니라, '보편'과 '특수' 사이의 근본적인 철학 갈등이라고 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적습니다. "자유주의는, 그것이 경멸하는 정체성 정치 없이는 공허하거나 무의미하다." 정체성 정치를 자유주의 바깥 의 침입자가 아니라, 자유주의 안에 이미 들어 있는 것으로 본 셈이지요.
즉 정치적 올바름은 처음부터 말씨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누가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인가. 자격의 문제였습니다.
무엇이 되었나
영향은 실제로 컸습니다. 미국 대학은 1980년대부터 차별 발언을 규제하는 speech code를 도입했습니다. 다만 법원은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1989년 미시간대 사건(Doe v.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코드는 "모호하고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며 위헌 판정을 받았고, 1992년 연방대법원(R.A.V. v. St. Paul)도 표현 규제에 부정적 신호를 보냈지요. 그럼에도 코드는 한동안 "예외가 아니라 규칙"으로 퍼졌습니다. 표현을 규제하는 정책을 둔 대학 비율은 2006년 75%에서 2016년 49.3%로, 10년이 걸려서야 처음 절반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여론도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았습니다. 2015년 예일대 조사에서 대학생 51%가 speech code에 찬성했고, 같은 해 퓨리서치 조사에선 밀레니얼 세대의 40%가 "소수자를 모욕하는 발언은 정부가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규제하려는 욕구와 그에 대한 반발이, 같은 시기에 나란히 자라고 있었던 겁니다.
2010년대엔 모양을 바꿉니다. '깨어 있다(woke)' — 원래 1938년 흑인 음악가 리드벨리가 "위험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쓴 흑인 영어 표현이 — 2014년 퍼거슨 사건과 흑인 인권 운동(BLM)을 거쳐 주류로 올라섰고, 2017년엔 메리엄-웹스터 사전에 등재됩니다.
그리고 시소가 반대로 기웁니다. 2020년 트럼프는 활동가 크리스토퍼 루포의 폭스뉴스 출연 3주 뒤, 연방기관의 反인종주의 교육을 금지하는 행정명령(13950)에 서명합니다. 2022년 플로리다의 'Stop W.O.K.E. Act'는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로 연방법원에서 제동이 걸렸지요("관점에 따른 차별은 수정헌법 1조의 가장 큰 죄"). 2023년 한 해에만 25개 주와 연방의회에 反DEI 법안이 최소 65건 발의됐고, 2024년엔 앞서 본 대기업들의 DEI 후퇴가 이어졌습니다.
역사가 토머스 짐머는 지금의 'anti-woke' 갈등이 1980~90년대 PC 논쟁의 직접적인 연속 이라고 봅니다. 한 매체(FiveThirtyEight)는 미국 우파의 공격 대상이 "외부 선동가(1960년대) → PC(1980-90년대) → 활동가 판사(2000년대) → woke(2020년대)"로 이름만 바꿔 이어졌다고 정리하지요. 한쪽이 밀면 한쪽이 되밉니다. 칭찬이 욕이 되고, 그 욕이 다시 또 다른 진영의 깃발이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배울까
한국은 이 논쟁을 비교적 최근에, 그것도 압축해서 수입했습니다.
국내 연구도 이 양면을 짚습니다. 정치사상 연구자 이미준(2023)은 PC를 두 층위로 나눕니다. 하나는 "제도화된 지배와 억압을 철폐"하려는 사회정의관, 다른 하나는 그것을 밀고 나가는 실천 전략. 그는 "PC의 적극적 실천이 공론장의 대화와 숙의를 단절시키는 경향"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일상에서 소수자의 목소리를 듣게 하고 실제 변화를 만든다"는 의의를 분명히 인정합니다. 비판과 인정이 한 글 안에 같이 있습니다.
또 다른 국내 연구는 더 직접적으로 묻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다져진 서구의 PC 비판을, 도입된 지 몇 년 안 된 한국에 그대로 옮겨도 되는가." 저는 이 질문이 정확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좋은 점도, 부작용도, 심지어 그 부작용을 향한 비판까지도 — 한꺼번에 들여왔으니까요.
한 단어의 일생이 알려주는 건 이겁니다.
선한 개념과, 그것의 도구화는 다릅니다. 개념이 무기로 쓰인다고 개념까지 버릴 일은 아니고, 개념이 선하다고 그 이름으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선한 것도 아닙니다.
칭찬도 욕도, 결국 사람이 단어에 입히는 옷입니다. 중요한 건 단어가 아니라, 그 단어로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가 일 테고요.
본 글은 공개 자료에 기반한 개인적 관찰·의견입니다. 사실관계는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참고
- Britannica, Political correctness
- Wikipedia, Political correctness
- Magnus Ullén, "The feminist origins of 'political correctness'", Feminist Theory (2024)
- Martin Spencer, "Multiculturalism, 'political correctness,' and the politics of identity", Sociological Forum (1994)
- James Boyle, "Universalism, Justice and Identity Politics: From Political Correctness to Constitutional Law" (Duke Law, 2000)
- Society for U.S. Intellectual History, "Politically Correct: A History"
- The Hedgehog Review, "Cultural Marxism" (음모론 서사 검토)
- MTSU First Amendment Encyclopedia — Campus Speech Codes · The Woke Movement and Backlash
- FiveThirtyEight, "Why Attacking 'Cancel Culture' And 'Woke' People Is Becoming The GOP's New Political Strategy"
- Merriam-Webster, What Does 'Woke' Mean?
- 이미준, 「정치적 올바름은 어떤 올바름을 추구하는가」, 정치사상연구 (2023)
- 「'정치적 올바름'의 소통을 위하여」, 사회과학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