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내 안의 괴물
#The Beast In Me
#Karma
Korean
Written by Paul
December 23, 2025

넷플릭스 드라마 The Beast in Me(내 안의 괴물)를 보며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단어는 ‘악(惡)’도, ‘폭력’도 아닌 업보였습니다.
이 드라마는 잔혹한 사건을 다루지만, 그 본질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업보의 고리에서 얼마나 벗어나기 어려운가를 집요하게 보여줍니다.
업보는 억압한다고 끊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은 흔히 고통의 원인을 지워버리거나, 눈앞에서 치워버리면 해결된다고 믿습니다. 단기간에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유예’에 가깝습니다.
극 중 나일이 그렇습니다. 그는 자신의 업보를 끝내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선택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택은 업보를 끊는 것이 아니라 업보를 강화하는 행위가 됩니다. 한 번의 결단으로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 믿지만, 그 결단 자체가 또 다른 업보의 씨앗이 됩니다.
이 지점에서 이 드라마는 묻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업보를 끊고 있는가, 아니면 업보의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는가?”
업보는 집착에서 태어납니다.
관계에 대한 집착, 정의에 대한 집착, 복수에 대한 집착. 이 집착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행동을 정당화하며, 그 행동은 다시 새로운 업보를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인간은 스스로 지옥을 설계합니다. 출구가 없는 구조처럼 보이지요.
그러나 드라마가 은근히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업보는 ‘이겨서’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놓음으로써’ 끊어진다는 점입니다.
법정스님의 말씀이 자연스럽게 겹쳐집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업보 역시 소유하려 들수록 강해집니다.
억울함을 붙잡고, 상처를 움켜쥐고, 정의라는 이름으로 칼을 들수록 업보는 우리 삶의 중심으로 들어옵니다. 반대로 놓아주는 순간, 그 업보는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중요한 점은 놓아줌이 도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드라마가 말하는 ‘release’는 회피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면돌파에 가깝습니다. 과거를 없던 일처럼 덮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용기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업보를 끊겠다는 강한 의지로 무리한 행동이 개입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업보의 논리에 들어가 버립니다. 그 안에서는 어떤 선택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결국 또 다른 업보를 만들 확률이 훨씬 높아집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결론은 조용하지만 단호합니다.
업보를 끝내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Just release it.
놓아주십시오.
당장은 패배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아무 일도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그 선택이 업보가 아닌 행복의 방향으로 삶을 조금씩 틀어놓았다는 것을요.
The Beast in Me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우리 안에 남습니다.
Thumbnail Copyright — Matthias Schröde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