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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 · Catholic

합리주의와 신앙주의, 그 사이에서

황금빛 일출이 비추는 안개 낀 산 풍경
Photo: Zetong Li · Unsplash

자가 QA가 가능한 비판적 신앙

By @coldsurf2026.05.20사람이 직접 쓴 글

본 글은 최규하 다니엘 신부님의 철학 강좌를 듣고 한 청자로서 정리한 글입니다. 강의 내용 자체의 저작권은 신부님께 있으며, 제 이해의 한계로 인한 오해·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적절한 부분이 있으시면 알려 주시면 수정·삭제하겠습니다.

지난주, 철학과 관련된 신앙 강의를 들었습니다. 본래 저는 실존주의적인 철학과 신학 모두에 관심이 있었던지라 퇴근하고 빠르게 운동 후, 저녁을 먹고 바로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또한, 해당 시기에는 제가 하느님의 현존과 세상이 왜,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해서 많은 궁금증이 있었던 터라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과 본능적인 끌림이 있었지요.


성당에 가득 찬 인파

저는 속으로 내심 신자분들이 많이 오셔봤자 얼마나 오시겠어? 라는 생각으로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살짝 일찍 도착한 편이라, 바로 성시간을 진행 중이던 대성전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인파를 목격한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산상설교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싶었습니다. 수많은 신자분들이 성시간 이후 해당 신앙 강좌도 그대로 참석했기 때문입니다. 자리가 없었던 터라, 살짝 자리가 난 아주머니 옆에 슬쩍 들어가 앉아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를 시작하며, 목차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강한 합리주의
  • 신앙주의
  • 비판적 합리주의

강한 합리주의

강한 합리주의는 한 줄로 요약한다면, 인류의 지성의 발달로 인한 이성주의에 가깝습니다. 다만 신앙의 개념이 더 섞이게 되면 바벨탑 사건과 비슷한 개념이 됩니다. 바벨탑 사건이란, 인류가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하늘까지 닿는 탑을 쌓은 사건인데요. 이 사건의 핵심은 하늘까지 닿는, 즉 하느님과 같아지고자 하는 마음으로 인류가 이름을 날리자라는 의도입니다. 결국, 탑을 세워서 인류의 오만함을 드러내게 되지요.

문명과 기술의 발달로 자신감을 얻은 인간은 해서는 안 될 신 놀음(Playing God)을 하게 되었던 사건이지요.

또 다른 예로, 계몽주의 시대를 들 수 있습니다. 이 계몽주의 시대에서는 종교적으로 인류가 한번 더 바벨탑을 쌓은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성적 사고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에 닿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가톨릭은 계시 종교입니다. 계시종교는 인간이 알려고 해서 아는 것이 아닌 하느님께서 열어보여야 알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이성적 사고와 반대되는 개념이지요.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통해 중력을 알아낸 아이작 뉴턴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원인으로서의 지성적인 최상의 존재가 실재함을 추론해야 한다.

뉴턴조차도,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지 못하였다면 중력이라는 것을 알아내지 못했겠지요.

이러한 이성적 사고에 강하게 기반하게 되면, 기적과 신비에 의존하기 싫어합니다. 또한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하고 말지요. 계몽 시대의 수학자였던 윌리엄 클리포드는 이러한 사고를 바탕으로 불충분한 증거는 믿으면 안 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즉, 증거 없는 믿음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재밌는 예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환시를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 꿈에는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어떤 어린 아이가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길어서 모래사장에 담고 있었다고 합니다.
  • 이를 이상하게 여긴 아우구스티노는 아이에게 묻습니다. "그렇게 바닷물을 길어올려서 뭐하려고 하니?"
  • 아이가 대답합니다. "모든 바닷물을 옮겨놓으려고요."
  •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대답합니다. "그게 가능하겠니?"
  • 아이가 말합니다. "그러는 당신은 어떻게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당신의 머릿속에 담으려고 하십니까?"
  • 홀연히 아이가 사라지고,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꿈에서 깨어났다고 합니다.

이렇듯, 하느님의 존재와 신앙이라는 것은 사람의 머리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기에 존재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을 신의 불가해성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신앙주의

이번에는 강한 합리주의와 반대되는 신앙주의라는 개념입니다. 신앙주의는 다음을 크게 주장합니다.

  • 종교적 믿음 체계는 합리적인 평가를 하면 안 된다
  • 증거나 추론에 의존하지 않고 이를 받아들인다

수학의 개념에 공리라는 개념이 있는데요. 이는 근본적 가정이나 증명없이도 그저 존재하는 일반적인 가정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임의의 두 점을 잇는 선은 하나이다라는 것처럼요.

즉, 필연성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무조건적으로 필연성에 굴복하진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강아지들은 졸리면 자고 배가 고프면 사료를 먹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배가 고프더라도 급한 약속이 있으면 굶기도 하고 졸려도 수업을 듣고 있으면 졸지 않으려 합니다. 결국 이는 인간은 선택이 가능하단 이야기인데요. 그는 더 나아가 자유로운 선택을 가능하게 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투신과 선택을 통하여 진정한 자기자신에 다다를 수 있다.

  • 인간이 존재하는 것 == 점점 더 자유로운 개인이 되어가는 과정 == 점점 덜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 고로, 주체성이 진리이다 라는 주장에 이릅니다. 결국 가장 주관적인 것이 진리이다
  • 객관적 진리의 부정이 아닌, 나에게 얼마나 열정을 주는 것: 그것 자체가 진리라는 것

내가 정열을 쏟아, 이를 나의 개인적 진리로 장악할 수 있는가. 이것이 신앙주의가 주장하는 바 입니다. 결국 단순한 단어들의 집합이 아닌, 체험을 통하여 나의 것으로 체화하는 과정인 것이지요.

이를테면, "서로 사랑하라"라는 성경 말씀을 머리로는 이해 불가하지만 실천과 체험을 통해서 그 뜻을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죽을 때 까지 이러한 주관적인 체험을 통해 진리에 다다르려 합니다.

즉, 말씀으로 전해진 객관적 진리가 개인의 헌신과 투신을 바탕으로 주관적 진리로 다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주의에서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객관적 수용은 이교이거나 무사고(nonthinking)이다.

결국, 신앙주의에서는 체험이나 실천없이 머리로만 이해하는 신앙은 존재하지 못한다는 말이지요. 또한 항상 인간을 초월하는, 이성을 뛰어넘는 것을 포용하기 위해 이성을 중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공포와 전율』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신앙이란 사고가 멈추는 바로 그 곳에서 시작하는 것

그렇다면, 신앙주의는 종합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을 것 같습니다.

  • 모험 (= 알지 못하는 것에 발을 들이는 것) 없이는 신앙이 있을 수 없다
  • 신은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에 아는 것이 아닌 믿는 것

이러한 신앙주의에도 난점이 존재하는데요. 바로 옳고 그름은 어떻게 구별하나? 라는 점입니다. 신앙주의에서는 이성을 중지해야 하니까 말이지요.


비판적 합리주의

여기서 비판적 합리주의란 개념이 등장합니다. 비판적 합리주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 믿음이 증명 불가능한 대상이라는 것은 인정하되
  • 내가 과연 올바른 길을 가고 있나?라는 회고가 뒤따라야 함

결국, 신앙은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뜻합니다.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는 견지하되, 모든 것을 알리라는 오만한 기대는 내려놓고. 믿음 안에서 진심으로 투신하는 것.

결국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강한 합리주의로는 믿음의 결단과 투신이 불가능하고, 신앙주의만으로는 내가 과연 옳은 길을 가고 있나라는 판단이 불가능할 때. 주관적인 나와 하느님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며 걷는 길

그것이 바로 올바른 신앙의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글은 최규하 다니엘 신부님의 철학 강좌 내용을 바탕으로 상당 부분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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